내집마련 방법 서울집산 후기
내집마련 방법 서울집산 후기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10년부터 현재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 근무를 하였다. 월급의 2/3은 저축해야만 하는 짠돌이였다. 처음부터 짠돌이 생활을 한 건 아니었다. 첫 월급을 탔을 때, 기쁜 나머지 조부모님, 부모님, 나를 위한 선물을 했다. 속옷 사드리고, 내복 사드리고, 나는 김택수 라켓을 35만원에 구입하게 된다. 친구들 만나고, 지인들 만나며 베풀면서 뜻깊은 한 달을 보냈다. 그러던 중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할아버지께서 나의 통장 잔액을 확인해 보시겠다며, 통장정리해서 가져오라고 명하시는 일이 발생한다. 첫 월급을 받은 지 29일째 되는 날이었다. 통장 잔액을 보니 2만원 정도 남아 있었고, 나는 그날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할아버지께 내 인생 처음으로 눈물 흘리며 처절하게 혼나게 된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을 나는 잊지 못한다. "돈은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10원을 벌어도 남는 게 없다면, 너는 미래가 없다." 상식적인 이야기 같지만,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고, 그 이후 나는 월급의 2/3뿐만 아니라, 남은 것이 있으면 모조리 통장에 모으기 시작하게 된다. 내 종잣돈의 첫걸음이 된 것이었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를 교회에서 만나게 되었고, 약 2년 반 정도의 교제를 통해 2013년 11월에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을 준비하는 당시 나는 통장에 4000만원 정도를 모아놨었고, 아내도 비슷하게 모아놓은 상태였다. 그때, 나는 4000만원을 모두 조부모님과 부모님께 드리자고 지금의 아내에게 제안을 하게 된다. 물론 아내 될 사람에게도 모은 돈 전부를 부모님께 드리자고 말했다. 그 이유는,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키워주신 것도 부모님의 은혜이고, 앞으로 결혼해서 살면서 그 은혜를 전부는 갚지 못하겠지만,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냉정하지만, 결혼하게 되면 내 가정이 우선이기에, 용돈도 많이 못 드리게 될 것이기에, 결혼하기 전에, 조금이나마 모은 돈을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자, 아내는 바로 거절했다. 이 돈도 모자란데, 어떻게 신혼집을 구할 것인지, 결혼을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여자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을 테니까,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는 결혼을 한 이후는 우리 가정이 우선이고,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주기만 하면, 우리 가정을 남부럽지 않은 가정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아내는 나를 믿어 주었고, 모은 전부의 돈을 부모님께 드리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각자 모은 돈의 전부를 각각 부모님께 드리게 된다. 그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본은 돈 1000만원 뿐. 할아버지께서 불쌍하다고 돌려주신 1000만원이었다.
'1000만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때 이전에 나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보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우리 집은 주택 반지하 전셋방이었다. 내 방은 너무 작아서, 미이라처럼, 한 사람이 누우면 그 자세로 움직이기도 벅찬 정도의 공간에서 자야만 했다. 방 천장과 구석구석에는 곰팡이가 가득했고, 화장실은 밖에 있는 공용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나는 이렇게 안 살 거라고, 내 집은 햇빛이 찬란히 비치고, 두발 뻗고 잘 수 있는 곳이 되게 할 거라고, 셋방살이 절대 안 할 거라고'. 나는 가난이 싫었다. 지긋지긋했다.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왜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책상도 있고, 어엿한 내 방도 있고, 화장실도 안에 있는 집에서 살 수 없는 것일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가.
부모님께서는 많이 다투셨는데, 결국 돈 문제였다. 아버지께서는 원양어선, 택시 운전기사, 화물트럭, 과일장사, 택배기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정말 열심히 사셨다. 누구보다 정직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발버둥 쳤어도, 한 달에 들어오는 생활비에서 남는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마이너스였다. 어머니께서도 도우신다고 밖에 나가 일을 하셨지만, 그래도 부족했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까지, 우리는 항상 가난하게 살았고, 카드값에 허우적거리며, 남들처럼 외식 한번같이 못하며 살았다. 과외는 커녕, 학원도 못다녔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일까?
나는 분석하기 시작한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서, 나는 가난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부자의 길로 가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우리 부모님께서 간과하셨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가난한 생각' '가난한 습관' 이었다.
아버지는 택시를 좋아하셨고, 새로 나온 휴대폰은 먼저 사셔야 했다. 어머니는 저축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한 달의 고정수입이 얼마이고, 어떻게 지출했는지의 여부에 관심이 없으셨다. 지갑에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카드를 꺼내서 쓰셨다. 다른 사람들은 아파트 청약 당첨되어 이사 가는데, 청약 통장만 만들 줄 아셨지, 어느 지역에서 분양을 하고, 돈은 얼마나 들고, 대출은 얼마나 나오는지에 대한 금융지식은 전혀 없으셨다.
결혼 승낙을 받고, 신혼집을 준비하는데, 아버지께 여쭈어보았다. "아버지 어떻게 할까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단칸방부터 시작해라.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다. 바르고 정직하게 살면서 노력해라. 그러면서 점점 집을 넓혀 가면 된다". 나는 바르고 정직하게, 노력하며 사는 것에는 옳다고 느꼈지만, 단칸방부터 시작하라는 말씀은 절대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저는 작은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구입하겠습니다."라고,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거의 대부분을 은행 빚으로 사야 하고, 은행 이자가 얼마인데, 그 이자가 아깝지 않니? 그 돈을 열심히 모아서 집을 넓혀서 가는 게 옳지 않겠니? 이자 값이 너무 아깝구나."라고..
죄송했지만, 나는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았다. 가난한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하고 다른 생각을 하며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부자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래서 서점에 갔다. 서점에 가서 부자에 관련된 모든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열심히 연구했다. 옷 살 돈으로 책을 사기 시작했다. 노트를 사서 적기 시작했다. 느낀 점, 배워야 할 점, 닮고 싶은 점들을 마구 적었다. 그렇게 내 수첩이 10개 정도가 모이게 될 때쯤, 조금 알겠더라.
결국, 2013년 9월에 신혼집으로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위치한 주공아파트 15평짜리를 구입하게 된다. 그때도 말이 많았다. 2013년도는 부동산 최대 하락 시기였고, 신혼은 모두 전세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직장에서도,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말로 물어보았다. "전세로 갔지? 아파트야? 빌라야?"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해명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전세로 갔다고 말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때 당시, 우리는 지하철 발산역 역세권, 800세대 이상인 대단지, 로얄동, 로열층, 남향, 사이드 아닌 물건으로 13층 물건을 1억 8900만원에 구입했고,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전부 다 했다. 방은 거실 겸 1개랑 작은방 1개, 화장실로 이루어진 작고 아담한 아파트였다. 매일 아내와 "우리 돈은 화장실 정도뿐이야, 전부 은행 집이야"라며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남향이라 햇빛도 아주 잘 들었고, 곰팡이도 하나 없었다. 거의 다 은행 빚이었기 때문에, 내가 번 돈은 은행 원금과 이자를 갚고,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생활을 했다. 그것도 남으면 모두 빚을 갚아 나갔다. 내 용돈은 10만원이었기 때문에, 병원 후배들도 나한테 밥 사달라고 하지를 않았다. 불쌍해 보였나 보다. 그래도 나는 미래를 위해 기분 좋게 내 집의 빚을 갚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갚다 보니 1년에 5000만원을 갚더라. 2년 동안 약 1억원의 빚을 탕감하고, 딸이 태어나게 된다.
15평에서 딸아이와 함께 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나는, 25평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게 되고, 등촌동으로 이사 온 지 2년 만에 우장산역 근처 초록 아파트 25평으로 이사하게 된다. 2015년 11월이었다. 나의 전략은 무조건 역세권, 대단지, 로열동, 로열층, 남향인 물건을 전세가 아닌 매입하는 것이었다. 집값이 매입 후에 오를지, 말지를 걱정만 하고 망설이기보다는 내 것으로 만드는데 집중 하는 것. 미래의 일은 신의 영역이기에, 오를지 말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것. 단지, 좋은 입지의 아파트를 내가 실거주 할 목적으로 사는 것이 나와 아내,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주거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사면 가치가 떨어지는 자동차, 좋은 옷, 좋은 가구 같은 소비재를 구매하기 보다, 금, 땅, 아파트 같은 실물 자산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등촌동 아파트는 마곡 개발을 힘입어 무서운 속도로 가격 상승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2억 5500만원에 매도하게 된다. 무려 시세차익을 6600만원이나 얻은 것이다. 빚을 많이 탕감한 상태였기 때문에 여유가 생긴 우리는 25평 초록 아파트를 3억 2500만원에 매입하였고, 역시나 인테리어를 전부 다 했다. 화장실, 거실, 바닥, 샷시, 중문 등 모두 깔끔하고 이쁘게 했다. 그래야 나중에 팔 때 내 아파트가 제일 비싸게 먼저 팔릴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내가 원하는 시기에 팔고, 살 수 있느냐가 곧 능력이다. 발이 묶여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가격의 아파트를 구입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진정한 고수는 기회가 오면 붙잡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넋놓고 있을 때, 고수는 조용히 사서, 조용히 판다.
인테리어는 아내에게 전부 맡겼다. 아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하라고 했다. 대신 인테리어 비용의 상한선만 정해주었다. 나는 내 아내가, 아이가, 내 집에서 원하는 인테리어를 하고 깔끔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세로 살게 되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 집이라는 평안함과 뿌듯함은, 내 집을 갖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그렇게 2년이 또 지났고, 우리는 4억 4500만원에 매도하게 된다. 시세 차익은 무려 1억 2000만원 이었다.
초록 아파트를 매도하고, 장인, 장모가 사시는 화곡 푸르지오 아파트를 2018년 1월에 매입하게 된다. 35평 물건이었고, 6억에 구입하였다. 이때 나의 나이는 서른 셋. 30대 초반에 서울에 브랜드 아파트의 주인이 된 것이다. 물론 역세권, 로얄동, 로열층, 남향, 풀 인테리어라는 나의 신념을 잊지 않고 그대로 실행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이곳이고, 현재는 11억 정도로 가격 상승이 이루어진 상태다. 아직 3년밖에 안 지났는데 말이다. 시세 차익은 5억+@ 일 것이다. 앞으로 언제 매도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때가 되면, 이곳을 매도하고 더 좋은 입지의 아파트로 이사할 것이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더 좋은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 나의 부동산 재테크이다.
나는 지금도 꾸준히 부동산 공부를 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가족, 친지, 친구, 직장동료분들께 도움을 주고 있다.
30대 초반에 서울 35평의 브랜드 아파트 주인이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겠는가. 가족들도 놀란다. 내가 흙 수저 중의 흙 수저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알기 때문이리라. 친구들도 가끔 만나면 물어본다. 어떻게 그런 집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재테크를 해야 하냐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설령 적중하지는 못하더라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대학>에서 나오는 글인데, 재테크의 기본은 간절함과 꾸준함이다.
나는 주식은 잘 알지 못한다. 부동산에서도 상가나 재개발, 재건축, 빌라, 오피스텔 등의 분야는 잘 알지 못한다.
아파트만 조금 안다. 젊었을 때는 신혼집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파트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아파트만큼은 호갱 되지 않고, 어떻게 재테크를 해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해야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줄 수 있다. 내가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
어떤 책에 이런 글이 있더라. 지식과 지혜를 뛰어넘는 것은 바로 경험이라고. 그렇다. 경험만큼 큰 게 없다. 나는 병원에서 깨달았다. 백 날 교과서만 봐서는 환자를 제대로 검사할 수 없다. 내가 직접 해봐야, 경험해 봐야 알 수 있다. 선배들의 경험이 담긴 노하우를 접하게 되면, 훨씬 빠르고 안전하게 나의 검사법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먼저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을 들어보아야 한다. 뉴스나 신문에만 의지하면 안된다. 주위의 이야기만 듣고 함부로 투자 해서도 안된다. 그래서 독서가 중요하다. 독서를 하게되면, 고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고,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그러한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실전 경험과 합쳐지게 되면, 비로소 진정한 나의 부동산 지식이 된다.
삶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그리고 선물은 공짜이다. 내가 선물로 받은 삶,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효도란 무엇일까? 나는 '내가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돈 때문에 헉헉거리고, 못 살겠다, 힘들다 하면 내 부모님은 어떤 생각이 드실까? 나보다 수천, 수만 배는 더 힘들 것이다. 그렇다. 내가 먼저 잘 돼야 한다. 그게 효도다. 부모님께 몇십만원 용돈 드리고, 해외여행 보내드리는 게 효도가 아니다. 본질은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잘 되면 다른 사람을 돌아보아야 한다. 인생은 선물이니까. 내가 지식을 나누고, 경험을 나누어서, 주위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니까, 너무 기분이 좋더라. 행복하더라. 물론, 모든 멘토의 말은 참고 사항일 뿐이다. 하지만, 좋은 권고가 되기도 한다.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그런 스승님이 계시다. 유명한 카페에서 활동하시는 분도 아니고, 부동산 재벌도 아니시다. 하지만, 나에게 큰 힘이 되시는 분이다.
돈은 왜 벌어야 할까? 왜 재테크를 해야 할까? 왜 부동산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 대한민국이라는 영토 안에서, 자본주의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함이다. 내가 잘 되면, 부모님이 좋고, 신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교회에 다닌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이 내가 잘 되기를 바라시지 않을까? 내가 매일 힘들고, 어려우면 과연 기쁘실까? 성경에도 쓰여있더라. "너에게 복을 주기 원한다"라고..
그렇다, 신도 내가 잘 되는 것을 원하신다. 나아가 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으로 베풀며 살기를 원하신다. 나는 그래서 신께 기도한다. 지혜를 달라고, 인도해 달라고, 도와 달라고.. 매일 이렇게 기도하며 산다.
그래서 내가 가난했듯이,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병원에 다니면서 매일 아픈 사람을 보듯이, 세상에는 몸도 마음도 아픈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늘 잊지 않고 사는 것. 그리고 그들을 도우며 사는 것. 이웃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인생에서 행복은 무엇일까?
나만 잘 되는 것, 내 가족만 챙기는 것, 내 거 내 거 내 거... 이런 삶이 행복한 삶일까?
내가 잘 되는 것, 그리고 다른 주위 사람을 사랑하고, 베풀며, 살아가는 것.
이게 행복 아닐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마지막으로 내게 큰 도움이 된 글을 올리고 이만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인생의 정답을 찾지 마시길,
정답을 만들어 가시길.
내일을 꿈꾸지 마시길,
충실한 오늘이 곧 내일이니.
남을 부러워 마시길,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시류에 휩쓸리지 마시길,
당대는 흐르고 본질은 남는 것.
멘토를 맹신하지 마시길,
모든 멘토는 참고사항일 뿐이니.
당신 마음속의 올바른 재판관과 상의하며
당신만의 인생을 또박 또박 걸어가시길.
당신이란 유기체에 대한 존중을 절대 잃지 마시길.
<여덟 단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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